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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올해 읽은 가장 영적이고 감동적인 책” “정말 그랬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경이롭고 흥미진진했으며, 영감 넘치고 설득력 있는 글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 국내외 구매 독자들의 서평
저자
아니타 무르자니
출판
샨티
출판일
2022.03.05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시간은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는 것처럼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우리의 현세적 마음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연속적인 장면들로 바꾸어놓았을 뿐, 실제로는 우리가 몸을 통해 표현하지 않을 때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각각의 모든 만남이 얽혀서 그때까지의 내 인생이라는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 속의 한 가닥 실에 지나지 않았지만, 또한 완성된 전체 그림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다. 

이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 자신에게, 내가 만난 모든 이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게 언제나 내 고유한 본질을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되려는 노력은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한 내 자신을 앗아가기만 했다! 그럴수록 다른 이들이 내 진정한 모습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뿐이었고, 내가 그들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진정한 내 자신이 되지 않는 것은 또한 내가 여기에 와서 되고자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의 모습을 이 우주로부터 빼앗는 것이었다. 

 

그저 내 본모습인 사랑이 됨으로써, 나는 내 자신과 다른 이들을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전에는 결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너무도 분명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같은 전체의 일면들이라면, 그리고 그 전체가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 당연히 본래 우리도 사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실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신의 진실대로 사는 것, 본디 제 모습인 사랑이 되는 것.

 

거울 속의 그 모습에서, 그 얼굴과 눈빛에서 나를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기나긴 고통을 보았다. 

'어떻게 내가 저토록 깊은 고통을 겪게 내버려둘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나 스스로에게 저렇게 지독한 아픔을 줄 수 있었을까?' 나는 몹시도 마음이 아팠다.

그랬다. 내게 저런 짓을 한 것은 바로 나였다.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삶은 그저 기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한 것이란 걸.

 

마음속으로 이처럼 흥분되고 뭔가 커다란 모험이 펼쳐지기 직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일이 펼쳐지게 하려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애써야' 한다는 느낌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난 그저 내 자신이면 되었다. 두려움 없이! 그것은 곧 내가 사랑의 도구가 되게끔 나를 허락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이 지구를 위해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혹은 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을 깨달은 이후로 더 이상은 이른바 문제라는 것들이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았다. 

이제 더는 이 위대한 모험의 단 1분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는 한 가장 많이 '내'가 되고 싶었고, 살아있는 이 기분 좋은 순간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음미하며 즐기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 온갖 잡다한 세상사, 미래나 돈, 직장, 집, 집안일 걱정 따위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사소해 보였다. 특히 내 앞에 어떤 과정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라고 확신했기에 더욱 그랬다. 

웃고 즐거워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전에 없이 새로운 가벼움을 느꼈고, 쉽게 웃었다. 나처럼 쉽게 웃는 이들과 함께 있으면 또 그렇게 즐거웠다. 

 

나는 세상의 모든 희생자는 물론 모든 범죄자와 테러범에게도 연민 이외에는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들 안에 혼란과 좌절, 고통과 자기 증오가 가득 차 있기 때문임을 난생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병들어 있어야만 했다. 사실 이는 암에 걸린 것과 상당히 비슷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고, 가장 중심에서 우리의 본질은 사랑이며, 우리는 장엄한 종재라는 등의 많은 메시지를 암사 체험 때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돌아가 두려움 없이 네 삶을 살아라!"라는 메시지야말로 내 안에서 가장 강력하게 계속해서 울려 퍼지던 메시지였다.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믿든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바로 영적인 존재, 그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써만, 그리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함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이 목적이 없는 것 같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 때, 그것은 바로 내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어 버렸다는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본연의 모습에, 내가 이곳에 와 있는 목적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 텔레비전 광고나 신문, 대형 제약회사, 친구들, 문화적 사회적 신념 같은 외부 원천에 내 힘을 내어줄 대 일어나곤 했다. 

 

늘 스스로에게 진실했으며,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냈다. 

 

우리 모두가 하나라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도 이 우주 전체를 '위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팠던 이유, 그리고 돌아오기로 선택한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치유는 비단 육체적 치유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감정적 치유이기도 했다. 우리의 감정은 사실상 이 물리적 현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나는 내가 그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이 벌어지도록 나를 '허용하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저 펼쳐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좋아요! 앞으로 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놓으셨든, 저는 열려 있습니다! 이제 알겠어요!'

 

우리의 유일한 의무는 늘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 그리고 허용하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미리 예상한 결과대로 되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내가 내 자신이 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암은 그저 내 자신의 에너지였다. 내 에너지가 두려움 때문에 내 본연의 장엄한 힘으로 표현되지 못하자 암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나를 벌주는 이는 따로 없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였음을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조건 없는 장엄함이 언제나 내 곁에 있었는데도, 육체적 삶이 그것을 가려버린 것 같았다. 아니 지워 없애버린 것 같았다. 

그것을 이해하자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마침내 병이 나은 이유는 내 진정한 영혼이 안에서부터 빛을 발하도록 내 스스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의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니라 존재의 상태에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만 스스로를 국한한다면 나는 내 잠재력과 내 삶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셈이 된다. 그러나 내 앎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불확실성에 편안해질 수 있다면, 이때 나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닿을 수 있다. 

 

믿는 것을 물론 믿지 않는 것까지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내가 가장 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삶이 나에게 그저 존재하기를 바라는 대로 내 자신을 맡길 때 나는 가장 강한 존재가 된다. 

나는 삶에 '맞서' 저항할 때가 아니라 삶과 '함께' 나아갈 때 가장 강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 대신 그저 자신에게 진실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 에너지의 도구가 되며, 그렇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각자의 장엄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없게 되고, 자신도 남에게 통제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 행동이 '행위함'에서 나오는지 '존재함'에서 나오는지 보려면 매일매일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감정이 뒤따르는지 보기만 하면 된다. 결정의 동기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열정인가? 내가 날마다 하는 모든 행동들이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행동이 두려움의 결과라면 나는 '행위하는' 상태에 있다. 

 

'혹시 몰라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때그때 옳다고 '느껴지는' 것에-그것이 무엇이든-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장엄함에 연결되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실천하고 교리를 따르는 등 뭔가를 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며드는 것을 알아챘을 때에는 그 생각을 판단 없이 받아들여 그대로 지나가게끔 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러면 그 생각과 감정은 결국은 지나간다. 따라서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때 내게 가장 좋은 길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저 '허용할' 뿐이다. 

 

기쁨 가운데, 당신의 장엄함을 깨닫고 또 이 세상 속에서 두려움 없이 당신을 표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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